[SNS 역사 2] SixDegrees.com의 등장과 몰락
지난 글에서는 SNS라는 개념이 활발히 사용되기 전에 존재했던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펴보았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SNS라고 불리지는 않았지만 사용자 간의 관계에 중점을 둠으로써 현재의 SNS와 같은 맥락의 서비스였음을 알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온라인 커뮤니티로 한국에는 싸이월드, 아이러브스쿨 등이 있고, 해외에는 프렌즈터(Friendster), 마이스페이스(MySpace) 등이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이들 온라인 커뮤니티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식스디그리즈닷컴(SixDegrees.com)에 대해서 살펴본다.
식스디그리즈닷컴은 1997년 Andrew Weinreich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Weinreich는 애널리스트로서 경력을 시작했는데,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법을 공부하고, 졸업 후 2년간 변호사로서 일했다. 변호사로서 일하면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을 자신이 아는 사람을 통해서 만난다(meeting people you don’t know through the people you do know)”는 개념을 도입한 온라인 소셜네트워크를 구상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식스디그리즈닷컴이다 [1].
그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6단계를 거치면 모두 이어져 있다는 Milgram교수의 “Six degrees of separation”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식스디그리즈닷컴을 만들었다 [2]. 식스디그리즈닷컴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게시판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던 The wall과 같은 기존의 커뮤니티 사이트들과 달리, 오늘날의 소셜네트워크 사이트들과 유사한 기능을 갖고 있었다. 사용자는 개인 프로필을 만들고, 친구목록을 설정하고, 자유롭게 다른 사용자의 친구목록에 들어가서 다른 사용자를 살펴볼 수도 있었다. 사용자 간의 의사소통은 메시지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친구나 가족 등의 초대가 없이도 가입할 수 있었다. 식스디그리즈닷컴의 인기가 절정해 달했을 때, 백만명의 사용자가 식스디그리즈닷컴을 사용하였고 백명의 직원이 있었다. Weinreich는 2000년 12월에 1억2천5백만 달러를 받고 사이트를 Youthstream Media Networks에 매각하였다 [3].
현재는 SNS 사이트들이 많아 식스디그리즈닷컴의 서비스가 차별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식스디그리즈닷컴과 같은 서비스를 하는 사이트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SNS가 활성화된 지금 식스디그리즈닷컴은 그 자취를 감추었는데, 블로거인 Prall (2010)은 식스디그리즈닷컴의 실패를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제시하였다 [1].
- 당시 기술력으로는 필요한 기능을 구현하기 힘들었다.
- 백만명의 사용자가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자금이 먼저 떨어졌다.
- 기존 사용자가 지속적으로 이용하게 하지 못했다.
- 9/11이나 버블 붕괴 같은 사건으로 인하여 충분한 광고 수익을 올릴 수 없었다.
- 온라인 광고 수익모델이 자리잡지 못했다.
비록 수 년간의 서비스를 뒤로하고 지금은 흔적을 찾기가 힘든 식스디그리즈닷컴은 이후에 등장하는 프랜즈터나 마이스페이스에 큰 영감을 주었고, 트위터(Twitter)나 페이스북(Facebook)같은 SNS 사이트의 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어떤 측면에서는 SNS의 선구자로 보여지지만, 위와 같은 여러 한계로 인해 그 성과가 후발 기업들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 된 2000년 이후의 커뮤니티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김종범, 2011/09/30>
- Prall, L. (2010), “SixDegrees.com – Social Networking in its Infancy,” Ezine Articles, September, 20.
- Travers, J., and Milgram, S. (1969), “An Experimental Study of the Small World Problem,” Sociometry, Vol. 32, No. 4, pp. 425-443.
- Wikipedia, SixDegrees.com.